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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웹자서전23

[이재명의 웹자서전] ep.22 야밤의 전력질주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시간이 시작됐다. ​ 공장에서 퇴근하면 바로 학원으로 달려갔다. 저녁 7시부터 3시간 수업을 듣고 오가는 버스에서 영어단어를 외웠다. 버스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통금시간에 걸리지 않으려고 독서실까지 전력질주했다. 공부방이 없던 나는 독서실에서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4시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와 3시간쯤 눈을 붙였다. ​ 공장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독서실로, 그리고 집에서 다시 공장으로... 시간과 싸우고 졸음과 전투를 벌이는 매일매일이었다. ​ 갈 길이 까마득한데 설상가상으로 공장에서 맞아서 갈비뼈가 부러지는 일이 생겼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의사는 가만히 누워 통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럴 시간도, 돈도 없었다. 결국 치료비 때문.. 2021. 12. 13.
[이재명의 웹자서전] ep.21 대학, 길이 열리다 공부에서 길을 잃은 나는 평범한 소년공으로 돌아갔다. 공장에서 책을 보는 일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TV를 보며 놀고 있는데, 술을 한잔 걸친 재영 형이 불쑥 한 마디 던졌다. ​ “나처럼 평생 공돌이로 썩으려면 공부하지 마라, 임마.” ​ 형의 말이 아프게 나를 찔렀다. 누구보다 대학에 가고 싶은 나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과외금지령을 내렸다. 과외로 학비를 벌어야 대학을 다닐 수 있는 가난한 형편의 학생들은 길이 막힌 셈이었다. ​ 목표도 없이 공장이나 다니는 내 모습이 동생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싶기도 했다. 동생들은 저녁 시간이면 화장실을 지키는 엄마와 교대를 서주곤 했다. 창피할 텐데도 불평이 없었다. ​ 막막해진 나는 성일학원 김창구 원장님을 찾아갔다. 검정고시를 준.. 2021. 12. 13.
[이재명의 웹자서전] ep.20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관하여 누군가 묻는다. 신기하다고... 가난했고,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다녔고, 자주 두들겨 맞았고, 팔도 다치고 후각도 잃었으며, 심지어 공부도 못하게 하던 아버지가 있었는데 어떻게 엇나가지 않았느냐고... ​ 흔히 소년공들이 그런 것과 달리 나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공장 회식 때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가출을 한 적도 없고 비행을 저지른 적도 없다. 월급을 받아 빼돌린 적도 거의 없이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가져다주었다. ​ 어떻게 일탈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낯설다. 스스로에게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 대답을 하려 들면 생각은 결국 강이 바다로 흘러가듯 엄마에게 맨 먼저 달려간다. ​ 넘치게 사랑해주던 엄마가 있었으니 일탈 같은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를 .. 2021. 12. 13.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9 약사의 잔소리 수면제를 20알이나 먹었지만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두 번이나 그러니 이상했다. 그때 별안간 다락방 문이 열렸다. 매형이었다. 매형은 연탄불을 보고는 상황을 금방 눈치챘다. ​ “처남, 오늘 오리엔트 면접날인데 왜 이렇게 누워있어?” ​ 매형은 짐짓 연탄가스가 가득 찬 다락방 상황을 모른체했다. 그리고는 공장까지 따라오며 괜한 우스개를 늘어놓았다. ​ 오리엔트에 도착하니 면접 볼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수위장이 사무실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아버지가 수위장에게 건넨 3천 원이 효능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문득 매형이 내 굽은 팔을 어루만졌다. ​ “내가 처남 팔 고쳐줄게. 걱정하지 마.” ​ 누나네는 우리 집보다 더 가난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과일행상을 하는 .. 2021. 12. 13.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8 수면제 20알 손목 통증으로 밤새 끙끙 앓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치료 받을 길은 요원했고 치워야 할 쓰레기는 끝도 없이 나왔다. 밤새 쓰레기를 치우고 오면 나는 젖은 박스처럼 구겨져 잠이 들었다. ​ 어느 날 잠결에 엄마와 아버지가 하는 얘기가 들렸다. “재맹이가 저러다 평생 빙신이 되머 우야니껴?” “돈 벌어서 수술하머 될끼라.” “집 살라꼬 모다논 돈으로 아 수술부터 시키야 되잖겠니껴?” 엄마의 말에 의식이 또렷해졌다. “그 돈은 아무도 손 못 대.” ​ 엄마와 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재생됐다. 한창 예민한 열일곱 살이었다. 가난은 아득해 보였고 한 팔을 못 쓰는 사람이 되어서도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온갖 절망적인 생각이 나를 삼키고 있었다.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 마침내 나는 모든 것을.. 2021. 12. 6.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7 ‘싸움닭’과 ‘무던이’ 나는 잘 될 거라는 자기확신이 있었다. 잘 될 것이니 도전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반드시 정규대학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학원에 보내달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 내 기세가 평소와 다르다 느꼈는지 아버지는 그달 안에 다시 취업한다는 조건으로 학원에 다니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학원에 다니는 와중에도 새벽마다 일어나 쓰레기는 치워야 했다. ​ 취업에 미적거리고 있었더니 아버지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아예 밤낮으로 자기와 일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종일 쓰레기를 치우라고? 나는 화들짝 놀라 발등에 불 붙은 사람처럼 서둘러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 - 학원 갔다 와서 공부 좀 하려 했더니 아버지가 쓰레기 치우러 나오라고 한다. 신경질이 났다. 신발을 확 집어 던졌다. 아버지가 그 모양을 보더니 한참 나를 노.. 2021. 12. 6.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6 홀로 끙끙 앓던 밤들 악착같이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도금실에서 락카실로 옮겼다. 락카실은 이중으로 밀폐된 구역이어서 덜 방해를 받았다. 나는 최고 속도로 작업 물량을 끝내놓고 남은 시간 공부했다. 그 시간이 내겐 유일한 도피처였다. ​ 그런데 몸이 자꾸 말썽을 부렸다. 두통이 잦아졌고 코가 헐기 시작했다. 락카실은 독성물질이 배출되지 않아 화공약품 냄새가 지독했다. 결국 나는 그곳에서 후각의 반 이상을 잃었다. 좋아하는 복숭아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됐다. ​ 프레스기에 치인 손목도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한 해 키가 15센티나 컸는데, 두 개의 손목뼈 중 성장판이 파손된 바깥뼈만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팔이 눈에 보일 정도로 뒤틀리면서 밤새 끙끙 앓는 날이 많았다. ​ 몸까지 아프니 이러다간 시험을 망치겠다 싶어서 공장을 .. 2021. 11. 29.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5 심정운과 절교하기 어느 날 정운이와 자취하는 친구로부터 정운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입 검정고시 학원에서 만나 절친이 되고, 오리엔트 시계공장을 다니며 같이 대학에 들어가자는 다짐을 했던, 나의 작은 스승 같았던 그 정운이가... 또 노는 데 도가 텄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소년공이랑 어울리며 술까지 마신다는 얘기도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배신감, 분노, 상실감 같은 것들이 뒤범벅이 돼 몰려왔다. ​ 그날 자취방에서 정운이를 기다렸다. 밤늦게 돌아온 정운이를 세워놓고 나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다닌다는 게 정말이야?” 정운이는 대답이 없었다. 사실이란 뜻이었다. 나는 말없이 정운이를 노려보았다. “널 믿었는데... 너랑은 이제 절교다.” ​공장과 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2021. 11. 26.
이재명의 웹자서전[이재명의 웹자서전] ep.14 성일학원, 김창구 원장님 공장에서 무급 연장근무 하느라 학원에 가지 못하면 정운이와 나는 속이 탔다. 결국 조퇴를 해가며 학원에 가야 했다. 공장을 다니며 공부를 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번번이 나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아버지였다. ​학원에 다녀와 밤늦게 공부를 하면 아버지는 불빛이 너무 밝다고 타박했다. 또 한 번은 학원을 쉬었다고 학원비를 덜 내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아버지는 전기세와 학원비를 너무나 아까워했다. 그러면 서럽고 원망스러워 눈물이 찍 고이곤 했다. ​그런 아버지가 학비를 대며 대학에 보내줄 리 없었다. 또 검정고시로는 고졸이어도 홍 대리가 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더는 학원비를 달라 하고 싶지 않았다. 지친 나는 결국 두 달 다닌 단과학원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만둔다고 하자 원장님이 불러 .. 2021. 11. 26.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3 퇴근길, 시 낭송하기 대양실업이 문을 닫았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낯선 공장을 기웃거려야 했다. 소년공을 괴롭히던 홍 대리와 반장들도 어깨를 떨어뜨리고 공장문을 나섰다. ​ 이번엔 제대로 된 공장에 들어가겠다는 다짐 덕분이었을까. 종업원이 2천명이 넘는 오리엔트 공장에 들어가게 됐다. 성남공단에서 넘버3에 드는 공장이었다. 거기엔 예상치 못한 행운도 기다리고 있었다. 고입 검정고시 학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 심정운을 만난 것이다. 말할 수 없이 기뻤다. ​ 그날부터 우리는 단짝이 되어 붙어 다녔다. 시들해졌던 공부 욕심도 살아났다. 고졸이 되어도 공장의 관리자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자고 맹세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공장에서 벗어나자고... 아주 멀리 반짝이는 별처럼 아득한 꿈이었지만 .. 2021. 11. 22.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2 홍 대리 되기 vs 홍 대리 없는 세상 만들기 기적적으로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시험준비를 시작할 때 나는 알파벳도 몰랐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석 달 만에 영어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무리였는데, 아홉 과목 중 한 과목의 과락도 없이 합격했다. ​ 원래 영어는 다음 시험에 과목합격을 노릴 요량이었다. 그런 내게 영어선생님이 비책을 가르쳐줬다. ‘4지선다형 문제에선 긴 답이나 3번 보기가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덕분에 영어는 다 찍었음에도 45점이나 받았고 전과목 평균이 70점을 넘어 중졸자격을 얻었다. 확률의 과학을 벗어나는 이런 게 바로 기적이다! ​ 엄마와 형제들이 축하해주었다. 아버지도 조금 뿌듯하게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단과 학원에 드나들자 아버지는 빨리 공장을 알아보라고 독촉했다. ​ 취업에 미적거리고 있으니 아버지는 .. 2021. 11. 22.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1 중학과정 석 달 공부 공장에서 맞지 않고, 돈 뜯기지 않고,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공장 밖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홍 대리! 눈이 튀어나와서 개구리눈이라 불리던 홍 대리. 그는 공장의 ‘왕’이었다. 반장도 홍 대리 앞에선 꼼짝 못했다. 홍 대리처럼 되고 싶었다. 홍 대리는 어떻게 대리가 되었는가? 중요한 화두였다. 슬쩍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의외로 답은 단순했다. 고졸이었다. 아, 고졸! 나는 원대한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일기장에 꾹꾹 눌러쓴 목표는 이러했다. 첫째, 남에게 줘 터지지 않고 산다 둘째,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난다 셋째,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산다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반대하는 야간학교 말고 다른 방법을 찾던 중 검정고시 학원이란 게 있다는 걸 알아냈다. 시험은 8월 초, 13주 가량 남.. 2021. 11. 17.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0 열다섯의 성공 위험한 일을 피해 보자고 용접에 눈독을 들였다. 열심히 용접공을 쫓아다니며 조수를 했지만 기술을 배울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행인지 아주냉동이 문을 닫았고 아버지는 곧장 다른 공장을 구해왔다. 나는 또 다른 공장으로 떠밀려갔다. 스키장갑과 야구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이었다. 그곳에서 ‘시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프레스기를 익혔다. 샤링기 유경험자, 매서운 눈썰미와 일머리 덕분에 나는 다른 소년공들보다 빨리 프레스기 한 대를 차지하게 되었다. 무려 프레스공! ‘나름 성공한 열다섯이었다’라고 쓰려다 만다. 성공은커녕 고무기판 연마기에 손이 남아나질 않아 공장을 옮겼더니, 더 위험한 샤링기를 만났고, 샤링기에서 떠나오니 프레스기 앞에 앉아 있었다. 세상은 소년공의 안전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대양실업.. 2021. 11. 15.
[이재명의 웹자서전] ep.9 내 몸, 백 개의 흉터 빙과류 판매용 냉장고를 만드는 아주냉동으로 공장을 옮겨 철판을 접고 자르는 일을 맡았다. 거대한 샤링기에 철판을 올리고 페달을 밟으면 순식간에 단두대 같은 날이 떨어지며 두꺼운 철판도 가위 속 종이처럼 가볍게 잘렸다. 동마고무에서 매일 아들의 손바닥에서 핏자국을 봐야 했던 엄마의 조바심 때문에 공장을 옮긴 것이었는데, 오히려 더 위험한 곳으로 간 셈이었다. 아주냉동에서는 출근하면 군복 입은 관리자가 군기 잡는다고 줄을 세워놓고 소위 ‘줄빳따’를 때렸다. 줄줄이 엎드려뻗쳐를 한 채로 엉덩이를 맞았다. 불량이 많이 난 날에도 빳따를 맞았다. 퇴근할 때는 군기를 유지한다며 공장문을 나서기 전 또 때렸다. 인권 같은 건 책에나 있는 얘기였다. “어!” 어느 날 옆에서 절단 작업을 하던 고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 2021. 11. 13.
[이재명의 웹자서전] ep.8 아버지와의 전쟁, 그 시작 공장으로 출근하는 길,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교복 칼라는 아침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났고 아이들의 가방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담겨 있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잿빛 작업복 차림이었다. 수다를 떨며 활기차게 등교하는 학생들을 거슬러 공장으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가급적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골목길을 찾아다녔다. 하루는 공장에 교복 입고 출퇴근하는 아이를 발견했다. 뭐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알아보니 고등공민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내 안에서 뭔가 ‘반짝’ 빛났다. “아버지, 저도 야간학교에 들어갈래요.”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말했다. 희망 같은 걸 언뜻 본 듯한 흥분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입만 바라보았다. “야간학교는 정규학교가 아.. 2021. 11. 13.
[이재명의 웹자서전] ep.7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석 달 치 밀린 월급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달뜬 마음으로 평소처럼 4킬로미터를 걸어 창곡동 목걸이 공장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공장문이 닫혀 있었다. 상황 파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장이 직원들 월급을 떼먹고 야반도주를 한 것이었다. 밤 9시가 넘어 퇴근 하던 길을 벌건 대낮에 터덜터덜 걸어 돌아왔다. 하루 12시간, 90일치의 노동이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요즘처럼 신고해 도움 받을 길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열세 살, 취업연령 미달에 이름도 남의 이름을 빌려 다니던 중이었다. “엄마!” 엄마는 집에서 부업으로 북어포를 찢고 있었다. 엄마를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억울함이 몰려왔다. 놀란 엄마가 뛰어나와 나를 안으며 토닥였지만 내 울음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이제 돌아.. 2021. 11. 13.
[이재명의 웹자서전] ep.6 열세 살, 목걸이 공장, 열두 시간의 노동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3년 전 앞서 성남으로 올라간 아버지를 따라 나머지 가족도 모두 상경했다. 1976년 2월이었다. 당시 성남은 서울의 빈민가와 판자촌 철거로 떠밀린 주민들이 모여 살던 도시였다. 우리 가족은 화전민의 소개집에서 성남 상대원동 꼭대기 월세집으로 옮겨갔다. 이사할 때 내 손에 들린 짐은 책가방이 아니라 철제 군용 탄통이었다. 탄통 안에는 몽키스패너와 펜치, 니퍼가 담겨 있었다. 자전거를 수리하기 위한 도구와 부품들이었다. 당시 나는 자전거 수리에는 도가 터 있었다. 자전거를 보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사람 힘만으로도 굴러가는 그 얇고 둥근 두 개의 바퀴라니... 페달을 밟으면 세상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어쨌든 내 출신성분은 공구로 가득했던 그날의 이삿짐만 보아도 분명했다. 시.. 2021. 11. 9.
[이재명의 웹자서전] ep.5 삼계초 5학년은 싹 다 수학여행 간다 초등학교 때, 험한 선생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학년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내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모두 가는 수학여행인데 재명이가 빠지면 되겠습니까? 아니, 우리 교장선생님께서 그렇게 방침을 세우셨다니까요. 삼계초등학교 5학년은 싹 다 수학여행을 간다, 이렇게요!” 산골짜기 화전민 소개집까지 쫓아온 선생님은 그렇게 열변을 토하셨다. 수학여행비는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남의 신세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어머니는 슬프고 복잡한 표정으로 수학여행 참가동의서에 동그라미를 쳤다. 돌아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못내 존경스럽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선생님을 바래다주며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화전민 소개집을 선생님께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소개집은 강제로 .. 2021. 11. 9.
[이재명의 웹자서전] ep.4 엄마가 믿고 싶었던 점바치의 힘 고된 노동에 아홉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아 일곱이나 키웠기 때문이었을까? 어릴 적, 어머니가 내 생일을 잊어버린 적이 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애들 밥 굶기지 않는 게 중요하지 생일이라고 뭘 대단하게 챙겨줄 수도 없었으니... 음력 22일인가, 23일인가 헷갈리던 어머니는 고민 끝에 점바치(점쟁이)를 찾아 생일을 물어봤다. 그 일을 두고 다 커서는 이렇게 엄마와 농을 주고받곤 했다. “엄마, 너무하네. 귀한 아들 생일도 잊어버리고...” “이자뿐 게 아이라니까.” “그럼 점바치에게 왜 물어봐요?” “확인 차 한 번 물어본 거라.” “아는 걸 확인하는데 그 귀한 겉보리를 한 되씩이나 갖다 바치시나요?" 어쨌든 겉보리 한 되에 우주의 기운을 모은 점쟁이는 내 생일을 23일로 확정했다. 문제는 이.. 2021. 11. 9.
[이재명 웹자서전] ep.3 뺨 스물일곱 대 아버지가 성남으로 떠난 뒤, 어머니 혼자 우리 남매들을 키웠다. 어머니는 화전을 일구거나 남의 밭일을 해주고 좁쌀, 보리쌀을 받아왔다. 그 보리쌀도 자주 부족해 겨를 얻어다 겨떡을 쪄먹었다. 겨는 보리의 껍질이다. 보리개떡이라 불렀던 겨떡은 아무리 잘 씹어도 삼킬 때 날카로운 보리껍질이 목을 찌른다. 개떡 같다는 말의 ‘개’를 멍멍이가 아니라 '겨'라고 내가 생각하게 된 이유다. 먹기 힘든 음식이었지만 나는 맛있는 표정으로 열심히 씹어 삼켰다. 엄마 표정을 슬쩍슬쩍 살피면서... 목구멍 따갑다고 투정부리는 남동생 여동생에게는 흘겨보는 것으로 눈치를 줬다.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간 적이 없다. 무슨 강조기간도 많아 그때마다 리본을 사서 달아야 했는데 그것도 못 챙겼다. 또 봄가을이면 .. 2021. 10. 29.